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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오로의 생애 (간략) 생애 (1) 생애 (2) 생애 (3) 전도여행 (1) 전도여행 (2)


1차 전도여행

2차 전도여행

3차 전도여행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공동체의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기 시작했고 흩어진 신자들은 이교도 지역에서 용감하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시리아의 수도 안티오키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혼성교회가 창립되어 '그리스도의 사람들' 즉 '그리스도인'이라 불릴만큼 독립된 종교단체로 주목을 끌었다. 이에 사도들은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에 파견해 교회를 돌보게 했고, 바르나바는 다르소에 머물던 바오로를 초빙하고 이때부터 사도 바오로의 위대한 전도여정이 시작된다. 사도 바오로의 위대성은 그의 전도여행에 있고 그 전도여행의 위대함은 구원의 복음이 유태교나 팔레스티나지역의 좁은 곳을 벗어나 전 세상을 위한 보편적 복음이 되게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데 있다. 바오로는 안티오키아를 거점으로 세 번에 걸쳐 지중해 동부지역에 광범위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안티오키아는 사회적으로나 교회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대도시였다. 안티오키아는 시리아의 수도로서 로마제국 안에서 로마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셋째가는 큰 도시였고 동방과의 무역로인 실크로드의 출발지이자 종착지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다. 안티오키아의 이러한 지리적 조건은 바오로 사도가 왜 이곳을 전교의 거점으로 삼았는지 충분히 대변해 주고 있다.
안티오키아의 이러한 지리적 중요성은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한 전화에 휩싸이는 계기가 되고 이로 인해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이 남긴 유적은 물론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고, 지금은 이름마저도 안타키아로 바뀐 도시 뒷 언덕에 있는 베드로 석굴성당만이 남아 그나마 멀리서 달려온 순례자들 허탈한 마음을 달래준다.
바오로 사도는 바르나바와 함께 이곳 안티키아를 떠나 키프로스섬으로 가면서 첫번째 전도여행(45~49년경)을 떠나 베르게 비시디의 안티오키아 이고니온 데르베 등지에서 전교활동을 펼쳤는데 이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입교했다. 이방인들의 입교자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에게 예수의 신앙만을 요구할 것인가 유대교 율법까지 지키도록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어 결국 예루살렘에서 사도공의회(49년경)가 열리게 된다. 교회 역사상 첫 공식적인 회의인 이 사도회의에서 이방인계 그리스도인들은 유대교의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음을 확인하는 동시에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전도하고 바르나바와 바오로는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기로 결의함으로써 바오로는 명실 공히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앞으로의 그의 전도여행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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