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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의 직업, 건강, 성격
바오로는 복음을 전하면서 스스로 생계비와 선교비를 마련했다. 바오로는 성격적으로 신자들에게 신세지는 것을 싫어했고 특히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했다(1테살 2, 9; 1코린 9, 4~18).
한편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돈 문제로 오해를 산 적이 있었다(2코린 8, 16~24; 12, 16~18). 이에 바오로는 자신이 돈 때문에 선교한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교회의 신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생계비를 마련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바오로는 자신이 쓴 편지에서는 무슨 일을 해서 생계비를 마련했는지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으나 다행히 사도행전 18장 3절에 그의 직업이 명시되어 있다.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41~54년 재위)가 49~50년에 로마에서 유다인들을 추방하는 칙령을 발표했다. 그때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가 코린토로 쫓겨 와서 지냈는데 바오로는 이 유다인 부부와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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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퀼라는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모든 유다인은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자기 아내 프리스킬라와 함께 얼마 전에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바오로가 그들을 찾아갔는데 마침 생업이 같아 그들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생업이었다(사도 18, 2~3).
바오로가 회심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기 전의 건강상태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회심을 하고 지중해 각지에서 선교할 무렵에 만성적인 지병을 앓은 것만은 틀림없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4장 13~14절을 보면 바오로는 2차 선교여행을 하던 중 오늘날의 터키 중부에 위치한 갈라티아 지방을 그냥 지나갈 생각이었으나 뜻밖에 병이 생겨 한동안 머무르게 되었고 그 기회에 그 지방에 여러 교회를 세웠다고 한다.
또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12장 7~8절에서 바오로는 “그 계시들이 엄청난 것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 나를 줄곧 찔러대 내가 자만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과 관련하여 나는 그것이 나에게서 떠나게 해 주십사고 주님께 세 번이나 청하였습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보면 바오로는 고질병을 앓았으며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몸이 약하다는 인상을 주었던 것 같다. 바오로의 몸이 허약해서인지 바오로를 만나 본 사람들은 “그의 편지는 무게가 있고 힘차지만, 직접 대하면 그는 몸이 약하고 말도 보잘 것 없다”(2코린 10, 10)고 말하곤 했다.
바오로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다혈질적인 투사형의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바오로는 그 무엇인가를 깨닫고 마음먹으면 곧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바오로는 자신이 유다교 신자였을 때에도 유다교를 신봉하는 데 철저했고 회심 후 예수님을 전하는 데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야말로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정열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철두철미한 성격의 소유자인 바오로는 지칠 줄 모르는 정열로 지중해 각지로 다니면서 복음 선교에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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