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사 : 방상만 수원가톨릭대 총장신부
일 시 : 2009.12.8(화) 20:00 ~ 21:30
신약성경의 그리스도
2009년 12월 8일
*시작기도: 요한 1, 35-39
I.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르 8,27-30; 마태 16,13-20; 루카 9,18-21)
마르코는 예수가 직접적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묻는 것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이 장면은 예수의 신원을 위해 특히 중요한데, 그것은 “너희는 나를(마태오; 인자를)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예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대해 제자들 이외의 사람들이 제시한 대답은 부적절하기는 하지만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세례자 요한의 메시지와 비슷하며 엘리아가 갖는 종말론적 역할과도 훌륭히 조화를 이룬다. 적절하지 못한 대답들(세례자 요한, 엘리아, 예언자들 중의 한분)이 제시된 다음 베드로는 “당신은 그리스도(메시아) 이십니다”(마르); “하느님의 그리스도”(루카);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메시아 이십니다‘(마태)라고 대답한다.
II. 예수의 생애 및 역사적 예수의 연구
그렇다면 ‘예수는 누구인가?’, 혹은 ‘나자렛 예수는 누구였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논구하여 답을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하지만 19세기에 있었던 예수의 생애에 대한 연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예수의 생애를 재건하고 그의 인품을 그려내어 예수를 박애를 선포한 급진적인 설교가로 규정하는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예수의 역사상 실재가 논란되기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천주교 영역에서는 예수생애연구에 이른 바가 없다. 여기서는 주석학이 새로운 복음서 고찰과 연결되면서 비로소 개시될 것이었다. 예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뒤따랐다. 이차대전 후대로써 신기원이 개시되었다.
이어서 복음서의 특별한 형태를 궁구하는 시대가 따랐다. 역사상 예수에 대한 되물음이란 의미 있는 일, 아니 필요한 일이다. 신학적 이유로 그것은 필요하다. 이 문제에 관해 불트만 학파 안에서 토론이 있었다.
史實 연구의 목표는 예수와 신약성서의 신앙 증거 사이에, 예수의 선포와 부활후대 공동체의 선포 사이에 기존하는 관계를 신약성서, 특히 복음서에 주어진 그대로 캐묻는 일이다.
III. 역사상의 예수
우리는 역사상의 예수를 알기 위하여 특히 공관복음서라고 부르는 가장 오래된 세 복음서, 곧 마르코, 마태오, 루카에 집중한다. 물론 이 복음서들도 역사상 사실에 관심이 있지만 특별한 성격의 역사적 관심이다.
복음서들은 역사상 예수를 그저 회고하려는 게 아니고, 동시에 선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예수께 대한 믿음을 일깨우고자 하는 데 있다.
복음서에서 정작 가장 힘찬 구성요소라고 보아야 할 것은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믿음이다. 예수의 메시지가 계속 전달되기에 이른 나머지 이제는 예수 자신이 예수의 설교 속에 포함되고 이리하여 선포하는 분에서 선포되는 분으로 넘어서는 양상이 생겨났다.
IV. 신약의 그리스도
예수 친히 메시아라고 말씀하신 바는 없지만, 그분의 활동이야말로 그분이 메시아라는, 그분의 활동이 메시아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이 명제를 가장 잘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1. 메시아 대망사상의 간략한 역사
1)첫 단계: 기원전 8세기 이전
2)둘째 단계: 기원전 8세기에서 바빌론 유배까지
3)셋째 단계: 유배에서 신약성경 시대까지
2. 그리스도론
1)“그리스도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주 일찍부터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메시아, 곧 “기름으로 축성된 분”-특히 다윗 가문에서 태어나실 오랫동안 기다리던 축성된 왕으로 이해하였다. “메시아”에 대한 그리스어는 Christos이며 여기에서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있게 되었다.
2)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
예수의 선포에서 ‘바실레이아 투 테우’(하느님의 나라)가 중심에 자리했다는 점에 반론은 없다. 하느님 나라는 글자 그대로 예수 활동의 핵심이다. 다른 모든 것은 이 중심점 둘레에 배열된다.
예수와 하느님 나라의 관계는 예수의 선포에서 그치지 않고 활동 전체를 아우를 만큼 본질적이다. 심지어 예수의 활동을 넘어서까지 미친다. 그래서 시간적 차원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느님 나라는 미래의 일이되 현재와도 관계가 있다.
V. 재림(내림)
“재림”(내림)이라는 주제 하에 사람의 아들의 도래, 예수의 재림, 그리고 권능 안에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관한 진술들을 살펴본다.
재림(내림)에 관해 기록된 문서가 빈약한 것은 신학적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도교는 희망의 종교이고, 하느님이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통하여 계속 수행하실 그것은 이 신학적 전망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교 선포의 핵심은 하느님이 예수 안에서 무엇을 하셨는가이다. 따라서 복음 또는 기쁜 소식이 저울에 올려 진다면, 이러한 요소가 하느님이 행하실 것 보다 무게가 더 나갈 것이다.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예수”는 “희망 속에 우리가 기대하는 미래의 예수”보다 무게가 더 나갈 것이다.
VI. 맺음말(제자됨)
예수께서는 군중을 상대로 메시지를 전하였지만 그로써 만족하지 않았으며 특별히 그의 측근에 사람들을 두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으므로 그들의 살아가던 방식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예수의 제자가 되고 예수를 따르는 일이란 제자가 예수의 활동에 동참하는 것, 하느님 나라의 선포에 참여하는 것이 그 으뜸 표지다. 물론 제자는 온전히 예수께 의존해 있으며 자신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예수와 더불어 활동하게 된다. 예수 없이 하느님 나라의 선포는 힘이 없다.
*마침기도: 마르 7, 3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