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십자고상을 좋아한다

사는 일이 어렵고 힘들 때
묵묵히 십자고상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내가 무슨 대단한 신앙을 지녀서가 아니라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십자고상을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큰 위안을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 집 안방이나 거실뿐만 아니라
직장의 책상 위에도 십자고상은 항상 놓여 있다.
“호승 군, 자네의 고통이 아무리 견디기 어렵다 한들
어디 나만큼이나 하겠는가?”
십자고상을 바라보면
예수는 늘 내게 그렇게 말한다.

어떤 때는 슬며시 십자가에서 내려와
내 어깨를 몇 번 툭툭 치고는
다시 슬며시 십자가에 매달려 고개를 떨군다.
나는 한때 그를 미워한 적이 있다.
언제나 완전한 사랑의 모습을 보여 주고
너도 나와 같이 하라고 억압하는 것 같아 싫었다.

용서와 사랑의 구체적 표상을 완벽하게 보여 주고
여유만만하게 웃고 있는 것 같아
그로부터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를 바라볼 때마다
그가 특별히 나를 사랑하는 것 같아 기쁘다.

비록 그가 내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방법으로
나를 사랑한다 하더라도
늘 나와 함께 있어 주어서 외롭지 않다.
정호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