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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7-09 13:11
사도행전을 따라가는 성경의 세계
 글쓴이 : Stephanos
조회 : 398  

다마스쿠스, 사울의 회심과 첫 선교 활동



스테파노가 돌을 맞으며 죽어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사울이라는 젊은이였습니다. 스테파노 사건으로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하면서 사울은 그 선봉에 섭니다. 교회를 없애려고 집집이 다니며 신자들을 끌어내 감옥으로 넘깁니다(사도 8,1-3). 그것으로 성에 차지 않았는지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합니다.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모조리 잡아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려는 심산이었습니다(사도 9,1-3).

다마스쿠스 체험
오늘날 시리아 수도인 다마스쿠스는 2000년 전에도 상업적으로 번창하던 도시였고, 많은 유다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회당도 여러 개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 회당들을 통해 새로운 길을 따르는 유다인 신자들을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길을 떠난 사울은 다마스쿠스 근처에서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갑자기 빛이 번쩍이더니 사울은 그만 땅에 엎어지고 맙니다. 그때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울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제 일어나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누가 일러줄 것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사울은 일어나서 눈을 떴지만, 앞이 보이지 않아 동행하던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다마스쿠스 성안으로 들어가 “곧은 길”(사도 9,11)에 있는 유다의 집에 묵습니다. 사흘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던 사울은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와서 안수하자 눈이 뜨여 일어나 세례를 받은 다음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립니다.
이것이 박해자 사울이 다마스쿠스에서 겪은 체험입니다. 사도행전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이 일을 전합니다. 한 번은 제삼자의 관점에서(사도 9,1-19), 다른 두 번은 바오로 자신의 입으로 (사도 22,3-16; 26,9-18) 전합니다. 세부 묘사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전체적으로 볼 때 세 이야기는 공통된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다마스쿠스 근처에서 특별한 체험을 했고, 이 체험 이후 그의 삶은 180도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나자렛 예수를 믿는 이들을 박해하는 자에서 나자렛 예수를 주님이요 메시아라고 선포하는 ‘복음의 사도’로 바뀌었습니다.

박해자에서 사도로
사울은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며칠을 함께 지낸 후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사도 20,20). 예수를 믿는 이들을 색출하는 통로로 활용하려던 회당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하는 장소가 됐고, 다마스쿠스는 사울의 첫 복음 선포 도시가 됐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가겠다고 대사제의 서한까지 갖고 왔다는 소문이 들리던 젊은이가 완전히 변해서 예수님이 메시아임을 “증명”(사도 20,22)하고 다니니, 다마스쿠스의 유다인들은 당혹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꽤 긴 기간이 지나자” 유다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공모하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사울은 극적으로 다마스쿠스를 탈출합니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그를 바구니에 실어 성벽에 난 구멍으로 내려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다마스쿠스를 빠져나온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이것이 사도행전이 전하는 사울의 다마스쿠스 회심 이후 행적입니다(사도 9,23-26). 이 설명대로라면 사울은 다마스쿠스 회심 사건 이후 줄곧 다마스쿠스에서 복음을 선포하다가 예루살렘으로 간 것이 됩니다.

아라비아에서 타르소까지
그런데 사울이 나중에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는 하느님의 교회를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 그러나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먼저 사도가 된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그러고 나서 삼 년 뒤에 나는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보름 동안 그와 함께 지냈습니다.”(갈라 1,13ㄴ-18)

이 서간에서 두 가지 특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다마스쿠스에서 바오로가 체험한 내용으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바오로 자신에게 계시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 체험 이후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으며 예루살렘에 간 것은 3년 후라는 것입니다.
사울은 왜 아라비아로 갔을까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추정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다마스쿠스에서 사울은 처음에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열정적으로 선포했습니다만,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과 자신의 삶에 대해 정리하고 숙고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아라비아로 가서 오늘날로 치면 일종의 피정을 하고 다시 돌아와 복음 선포 활동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다인들의 반감을 샀고 제자들의 도움으로 탈출해 예루살렘에 갔다고 말입니다. 학자들은 아라비아가 세계적인 문화유적지이자 관광지인 요르단의 페트라를 수도로 하는 나바테아 왕국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예루살렘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사울을 피하다가 바르나바를 통해 자초지종을 전해 듣고는 받아들입니다. 사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담대히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다가 유다인들 특히 그리스계 유다인들의 미움을 삽니다. 사울이 위험에 처하자 예루살렘의 신자들은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갔다가 다시 그의 고향 타르수스로 보냅니다(사도 10,26-30).
타르수스는 지금의 터키 땅인 소아시아 남쪽 로마 속주 킬리키아의 수도로, 사울은 이곳에서 유다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예루살렘에서 유명한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바리사이였습니다(필리 3,5). 그는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없애 버리려고 다마스쿠스로 떠났지만, 다마스쿠스에서 회심하여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도’로 거듭났습니다.

오늘날 일반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다마스쿠스를 순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마스쿠스에는 2000년 전 바오로 사도의 숨결을 느끼게 하는 자취들이 남아 있습니다. 성으로 둘러싸인 옛 도심에는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길이 곧게 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곧은 길”입니다. 동문에서 북쪽으로 가다 보면 하나니아스 경당이 있습니다. 하나니아스가 살았다는 집 지하에 조성된 비잔틴 시대의 경당입니다. 성 동문 옆에는 바오로가 바구니에 실려 성벽을 타고 탈출한 일을 기념하는 바오로 경당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오로 사도의 자취를 더듬는 일 못지않게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사울, 바오로 사도가 체험한 핵심이 무엇인지를 숙고하는 일입니다. 어느 학자는 ‘용서받았다는 체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미워하고 없애려고 했던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이보다 더 큰 용서 체험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진 설명(위로부터)>
 하나니아스경당(BiblePlace.com)
 <사울의회심>카라바조 작(BiblePlace.com)
 다마스쿠스의 동문, 다마스쿠스에 아직 남아있는 로마시대의 유일한 문으로 ‘곧은 길’로 연결된다.(좌)
 곧은 길(우)(BiblePlace.com)
 바오로가 예루살렘에서 다마스쿠스로 간 길(BiblePlace.com)

 

글 / 이창훈 알퐁소 전 평화신문 편집국장 

 

[출처]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7월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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