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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5-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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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과 이십년 : 아홉 차례("사제의 해"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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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13,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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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얻는 방법은 기도와 성사라고 배웠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 실천 또한 하느님의 은총이기에 그저 우리는 열심히 기도할 뿐입니다.
교회는 “바오로의 해”에 이어 2009년 6월 19일부터 2010년 6월 11일(예수 성심 대축일)까지 “사제의 해“를 선포하면서 사제들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기를 당부하고 교황님께서 전대사를 허락하셨으나 이제 불과 한 달 남았습니다.
대림시기나 사순시기에 거룩하게 지내고자하는 우리의 결심이 작심삼일로 그쳤던 것 같이 이 은혜로운 ”사제의 해“도 그렇게 보내고 있지 않았는가? 제 자신을 뒤돌아보며 이 땅에 사제를 모시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우리의 신앙 선조 정하상 바오로 성인(수원 가톨릭 대학교 주보 성인)의 행적과 노고에 감사하며 그분의 전구를 빌어 꼭 한 달 남은 이 은혜로운 때를 잘 마무리하기를 염원해 봅니다.
정하상 바오로 성인은 1795년 아버지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와 성녀 유소사 체칠리아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이 누나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형 정철상 가롤로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하셨고 당시의 유일한 사제이셨던 주문모 신부님 또한 순교하시어 이 땅에는 하느님 은총의 통로인 성사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성인은 주보이신 바오로 사도가 복음 선포를 위해 먼 곳까지 여행하였던 것처럼 이 땅에서 성사생활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 목자이신 사제 영입을 목적으로 양반의 신분을 감추고 1816년 21세 때부터 엄동설한 추위에 떠나는 동지사 일행의 짐꾼으로 무려 사오십 킬로그램의 등짐을 지고 육로로 일만 킬로미터가 넘는 북경을 아홉 차례나 다녀오십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북경교구 주교님을 만나 사제를 파견하여 주기를 청원하고 또 북경주교를 통해 로마 교황청에 한국교회의 비참한 실정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기도 합니다. 엉뚱한 이름을 빌려 쓴 그 편지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들의 최고 감목이신 교황께 조선교회의 암브로시오(엉뚱한 이름)와 그 동료들은 인사와 깊은 공경을 드리나이다. 구세주 예수께서 강생하사 세상을 구원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1800년 동안 땅의 극변까지 복음을 전하여 어둠 속에 앉아있는 백성을 비추어 준 성인들과 학자들이 끊이지 않았나이다. 저희들의 나라도 비록 비천하기는 하오나 생명의 말씀을 듣고 천주와 더불어 화해하는 은총을 받고 수난의 공로와 만 번 무한한 주님의 자비에 참여하는 기쁨을 맛보았나이다. 그래서 주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리는 것이 저희들의 본분이 아니겠나이까? 그러하오나 저희들은 괴로움과 고민에 짓눌려 있사와 이 사정을 성부(교황)께 사뢰어 성부의 배려 있으시기를 빌 필요가 있다고 사뢰나이다. …(중략)… 그러므로 저희들은 교황 성부께 두 가지 일을 겸손되이 제안하옵는데 이 두 가지가 똑 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오며 이 두 가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것이옵니다. 어떤 사람이 여러 날 동안 굶고 지내면 기력이 진하여 죽게 되옵니다. 그 사람이 한 달 안으로 식량을 얻게 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의 심한 허기증을 풀어줄 얼마간의 양식이 당장에 오지 않는다면 나중에 오게 될 양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이까? 그리고 그 사람이 다음 달에 식량을 받게 되어 있지 않다면 그가 오늘 먹을 음식이 무익하지 않겠나이까? 이와 마찬가지로 신부를 맞아드리는 것이 저희들로서는 큰 은혜요 크나큰 기쁨이 되리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오며 이와 동시에 저희들의 욕구를 계속 채워주고 장래에 있어 저희 후손들에게는 영신적 구원을 보장하여 줄 방법이 강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충분한 일일 것입니다. 만약 저희들이 언제까지나 버림을 받아야 한다면 저희들의 불행에 대하여 잠시도 동정을 받지 않는 편이 낫지 않겠나이까? 좋은 결과를 거두기 위하여서는 우선 신부들을 보내어 저희들의 긴박한 사정을 돌보게 하고 …(후략)
그후 성인의 노심초사에 하느님께서 귀를 기울여 주셨는지 곧 한국교회가 교구로 설정되었고 그 보람으로 1833년 유방제 신부님을, 1835년 말에는 모방 신부님과 샤스탕 신부님을 맞이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으며 1836년에는 귀환하시는유방제 신부님과 함께 떠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생 세 분을 국경까지 환송해드립니다.
이와 같은 성인의 공적을 어여삐 보신 하느님께서는 성인의 간구를 들으시어 우리나라의 신학교에서 많은 신부님들이 나오게 허락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은 그 신부님들과 함께 성사생활을 하는데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게 되었음은 아직도 성인께서 하늘나라에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제의 해” 남은 기간 동안 정하상 바오로 성인의 전구를 빌어 성인과 함께 이 땅에 많은 축복 주신 하느님께 감사 기도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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