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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11-09 15:09
처음으로 예수님을 모시다 보니 ...
 글쓴이 : 가로등
조회 : 8,263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한 인도인 신부…20년째 ‘소리없는’ 사랑 실천
[쿠키뉴스 2006-01-02 17:00]

[쿠키사회] ○… 1967년 13세의 나이로 가톨릭 신학교에 입학한 인도 소년 야고보는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400년 넘게 가톨릭을 믿어온 가문답게 형제중 하나는 신부의 길을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이 10남매 가운데 넷째인 자신의 운명으로 지워진 것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무채색의 칙칙한 옷과 규율이 싫어 수도원 담장을 넘기도 했고 여자친구를 사귀며 평범한 삶을 꿈꾸기도 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흐른 2일 서울 을지로2가 기업은행 본점앞. 당시 철없던 인도 소년은 새해 첫 출근으로 분주한 서울의 번화가 한편에서 100여명의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밥과 국을 챙겨주는 신부로 변해 있었다.

노숙자들에게 ‘배 신부’로 통하는 야고보 신부는 “1972년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계기로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음을 정리하고는 사제 서품을 받았다”며 “1986년 선교사로 한국땅을 밟은 후 20년간 한국인들과 함께 했다”고 말했다.

신부가 된 지 1년6개월만에 이국땅에서 선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한국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빈곤이 당연시되었던 인도에 비해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성장신화를 이어가던 한국은 부족함 없는 ‘부자나라’로 다가왔다.

그는 “처음엔 이런 부자나라에서 내가 과연 무얼 할 수 있을지 고민했었다”며 “그러다 서울 영등포역 주변에서 밥벌이를 위해 성매매를 하는 여성을 돕는 수녀들을 만난 후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달에 한번씩 이들 성매매 여성과 그 자녀들을 위해 미사와 식사를 함께 했고 1980년대 산업화에 소외된 도시 빈민을 위해 경기 성남시의 달동네로 들어가 함께 거주하며 이들을 돕기도 했다. 야고보 신부는 “당시 저임금 중노동에 시달리는 공장 노동자,사회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민주화운동에 뛰어든 대학생 등 소외된 이들과 함께 했다”며 “활동의 폭이 넓어지면서 당국의 감시대상이 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본명 야고보 페이스의 한국식 이름인 ‘배형진’도 당시 쪽방촌을 찾아온 대학생들이 지어준 것이다.

그의 한국 사랑은 80년대 도시 빈민을 위한 활동에 그치지 않고 90년대 외환위기로 인한 노숙자 쉼터와 2000년대 난치병 환자 공동체 등으로 20년간 이어졌다. 기자의 취재 요청에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1년간 인터뷰를 거절해오다 어렵사리 취재에 응한 그는 현재 서울 북아현동 ‘말씀의 선교수도회’에서 봉사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정동권 기자 danch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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