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사제들의 독선적 사목형태의 원인과 대책
1) 독선적 사목의 원인
가톨릭 사제들은
주교로부터 파견되어 주교의 사목 지침과 방향에 따라 본당 구역 안에서 사목활동을 한다.
이 활동으로 본당 지역 안에 교구를 현존케 함으로써 세계 교회를 현존케 한다.
수도자는 교회에 있어서 특히 예언적이고 선교적인 사명에서 사목직에 동참하므로 일정한 지역 공동체에 전념하여 봉사하지 않는다.
사목의 개념은
어원적으로 목자(牧者)란 단어에서 나왔으나
그 성서적 의미는 마치 양을 치는 목자가 양떼를 돌보듯이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보살핀다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이 내용이 교회사 안에서는 교계제도의 교직자들이 하는 활동으로 이해되었고,
16세기 이후부터는 성직자가 성사집행을 하는 내용으로 극소화시켜 이해하였다.
사목이란
교회의 본질적 사명에서 나오는 '인간 구원의 봉사'(주교교령 35) 활동이다.
과거에는 영혼을 보살피는 일을 사목이라 하여 이를 오로지 성직자의 임무로 보았으나,
오늘날에는 널리 '보편적 구원의 성사'(교회헌장 1)인 교회가 세상과 관련을 맺는 모든 활동을 두고 사목이라 일컫는다.
사목이 세상의 구원을 위한 봉사라면
참되고 유일한 목자는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으로 말미암아 구원된 모든 이들을 받아들여 한 몸을 이루시고
그 머리가 되시어 지체로 삼으시고 그들을 당신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시키셨다.
그러므로
사목자란
넓게 보면 예언자요 사제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사명에 참여하는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이다.
좁게는 사도들의 후계자들인 주교들과 주교를 본 목자로 하여
이를 협조하는 사제들을 말한다(주교교령 25-35).
그러므로 사제들은 ‘위계적’이며 ‘직무적’이기도 하다.
사제들은 신자 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교역’, 곧 ‘봉사’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자 공동체나 그들의 ‘요청’ 또는 ‘위임’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교역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충만한 사제직에서 오는 공동체를 위한 선물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에서 주교-사제-부제의 직무는 교회 안에서 곧 고유한 성직계급이 되었는데,
이는 창설자를 가지고 있는 모든 종교의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성직자 중심은
“로마식” 교회의 권위주의와 한국의 양반-관료적 위계 문화가 맞아떨어진 독특한 현상을 보인다.
성직자는
평신도를 자기의 사목 방침 정도나 채워주는 아랫사람으로 여기고
평신도는 이를 완수하는 것으로 자기 할 일 다 했다 생각할 때가 많다.
이러한 생각으로 가톨릭 사제들의 독선적인 사목을 하는 원인이 되었다.
한국교회의 성직자는
그전보다 더 많은 대우를 받았으면 받았지 결코 덜 받지 않는,
여전히 성직자 중심의 교회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평신도는 사목의 대상으로만 다루어지고 있고,
성직자는 그 위에 “권위있게” 군림하는 자로 인식되고 있으며,
교회는 여전히 성직자하고 만 동일시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교회의 일(봉사활동, 선교, 기도)은
평신도가 거의 도맡아시피 하면서도 평신도는 자신들의 주체성을 찾지 못하고
쉽게 성직자의 사목 대상만이 되고 있으며,
본당의 평신도협의회는
본당신부의 명령을 이행하는 기관 정도로만 머물고 있다.
평신도는
성직자의 이런 권위에 혹 불만이 있다 해도
교회의 권위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당연하게 생각해 버렸다.
또한 본당 사제가 바뀔 때마다
뒤바뀌는 본당 행정과 사무장의 교체만 보더라도 본당 사제의 독선적 사목을 보여준다. 본
당의 역사도 역시 본당 사제를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다.
2) 독선적 사목의 대책
가톨릭 사제들의 독선적 사목형태의 대책으로
성실한 성무 집행과 과거와 달리 지적수준이 높아진 평신도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본당 사제의 실상은 그의 성실한 성무 집행에 있고
성무 집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나누어주는 것으로 참된 사제상을 부각시켜야 한다.
다시 말해서 본당 사제의 사제상은
사제들 자신이나 교우들에 의해서 요청되거나 인정받기 이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행하는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의 인정이나 냉대에 흔들리지 않고 성실하고 충실하게 자기의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이와 같은 생활에서 참된 사제상을 얻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보고
"이 사람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마르 15,39)하고 고백하였듯이
부르심에 끝까지 충실하여 '치명'하게 될 때 그는 하느님의 사제였구나!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사제상을 보여준 사람이 될 것이다.
사제가 자신의 직무를 스스로의 인간적 힘으로 온전히 수행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는 죄악이 만연한 현실 세계 안에서 생활하는 인간들로부터 선발되었지만
나약한 인간성을 여전히 지닌 유한한 존재로 머문다.
그러므로 사제는 결코 “전능한 신적 존재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는 나약한 인간으로서
역시 나약한 인간들로 하여금 하느님과 일치토록 하기 위해 이들 모두를 위해 선발되어 파견된 사람이다.
그래서 사제의 파견은
대사제 그리스도의 파견으로 귀착된다.
결국, 사제 역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처형되기까지 당신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낮춘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인간적 원의와 갈망을 불사르고 철저한 자기비허적 위탁생활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사제가 현세적인 특권과 영예를 누리려고 급급하는 대신에
이웃, 특히 병들고 가난한 소외 계층을 위해 봉사하고 불의한 사회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투신하면서
교회 공동체를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노력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정체를 보존하고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현존케 하는 씨앗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직시하고
이의 해결을 위해 전력하는 위타적인 봉사적 사제가
우리가 요청하는 오늘과 내일의 바람직한 사제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사제가 교회의 중심이 아니라
평신도가 교회 생활에 제대로 참여하고 세상에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사목협의회를 진정한 친교정신으로 조직하고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평신도 고유의 역할은
교회의 사명 수행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세속에의 과제를 이행하는 것이다.
즉 현세 일에 종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현세 사물을 관리하고 비추어 줌으로써 천국을 찾도록 불리었다(교회헌장 31).
그러므로
모든 평신도의 사명은
평신도를 통해서만 교회가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는 그 장소와 환경 속에 교회를 현존케 하고 활동케 하는 것이다(교회헌장 33, 평신도교령 2-4).
이를 평신도의 일반 사도직이라 부른다.
이밖에 예외적으로 평신도들은 일찍이 바울로를 도와주던(사도 18:8, 로마 16:3) 남녀 교우들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성직 사도직을 돕기 위하여 불릴 수도 있다(교회헌장 33).
'가톨릭 운동'이라 불리는 사목활동단체가 그 예이다(평신도교령 20).
이 때문에 평신도 사도직의 충분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 교육이 필요하다(평신도교령 28).
사목활동의 성과는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 상호간의 협력과 투철한 교회 정신에 의존하는 바 크다.
교회의 본질에 대한 확고한 신념, 건전한 신앙에 근거한 깊은 영성은 사목활동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퍼온 글>
참고 도서
1) 단행본
가톨릭 대사전
이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