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80인가?
~ 엄마 생각이 문득 가슴 속에 치밀어 올라 ...~
신년 초 아내와 둘이 앉아 “아침 마당”을 보니 원노 연예인(?) 송 해 씨가 나와서 지난 날의 회고담을 털어 놓고 있다
60여년 전 젊은 날에서부터 남북한을 넘나드는 숙명적인 일화를 풀어내는데 그 말 끝에 문득 나의 어머니 생각이 떠오른다
방앗간 집 고명 딸로 곱게 자란 꽃 다운 나이에 한의원 집 맞 며느리로 시집 와서 청상 홀 시어머님의 시집살이가 시작된다 대가족의 살림살이 ... 장작 불로 큰 솥에 밥 짓고 많은 식구들 빨래에다 숯불 다리미질 등등 여가가 별로 없는 고된 일상 ... 신랑은 맨날 늦은 밤 약주가 거나해서 들어오는 게 일상이고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의 불 호령이 번득 번득 ... 마치 심파 영화에나 나오는 ‘스토리’같은 시집살이(?) ... 고된 건 고사하고 무슨 낙으로 사셨을까? ... 연민이 와락 치밀어 오른다
지금도 내 기억에는 아침 밥상 풍경이 눈에 선~ 하다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장손인 내가 겸상을 받고 동생 댓 명이 둥근 상에 따로 둘러 앉는다 5일 장마다 불고기(너비아니?)를 장만해서 어른 상에는 접시에 담아 내고 애들 둥근 상에는 밥 그릇 위에다가 몇 점씩 할머니가 논아준다 요즘 같으면 ‘더 달라’ ‘난 왜 작은 걸 주느냐?’는 투정이 나올 수가 있을 법한데 그 때는 ‘아뭇 소리도 못한 채’ 감지덕지다
어느 해 정월에는 한복 명주 솜바지에 비단 조끼로 호사 한 채로 공릉천 큰 뚝방 잔디에서 하루 종일 정신 없이 미끄럼 질을 하다가 저녁 땅거미가 되어서 집엘 들어섰는데 비단 바지 궁뎅이가 다 헤어져 나가서 엄마한테 혼쭐이 난 생각이 난다
나는 젖 떨어지자마자 할머니하고 젖 만지며 10살이 넘도록 잠 자릴하며 자랐다 한 여름에는 홀라당 다 벗고 삼베 홋이불만 덮고 할머니한테 착 달라붙어서 잤다 대학에 다닐 때까지도 내 옷은 할머니가 챙겨 주셨다 내가 출근 할 때는 구두를 연탄 땐 아랫뫀에 묻었다가 내주셨다 그러던 할머니가 내가 군대 복무할 때에 위암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내 무릎을 비고 운명하셨다 내가 머리를 땅땅 부대끼면서 대성통곡하니 엄마가 급한 김에 ‘남들은 부모를 잃고도 사는데 년노하신 할머닌데 왜 이리도 난리냐?’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8.15 해방, 정부 수립, 6.25동란 등 역사의 회오리 속에서 우리집은 토지개혁으로 소작(농토를 빌려주고 농산물을 지대로 받는 제도) 주었던 농토를 다 잃게 되면서 경제기반이 약화된데다가 6.25동란으로 가재가 몽땅 잿더미가 되었다
1.4 후퇴 때에는 아버지는 방위군 소집으로 입대하시고 피난을 왔다 갔다 하면서 충북 진천에서 엄마가 떡장사하면서 생계를 이어가던 피난 시절도 겪었고 휴전 이후엔 서울 살림을 엄마와 장손인 내가 맡게 되었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든든한 직장에 다니면서 생활기반을 다져나갔다 신혼 초에는 단칸 방에서 신접살림도 해봤고 나이 들어가면서 생활기반이 잡히면서 큼직한 아파트에서 사는 모습도, 훌륭한 직장에서 남들이 우럴어보는 직책도 해내는 모습을 보시고 어머니가 흐뭇해하셨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머니가 조금만 더 사셨으면 좀 더 잘 해 드릴 수 있었을 텐데 ...’ 그랬으면 내 마음이 그래도 좀 나으련만 한 없는 후회가 가슴 속에서 물결쳐 온다 ‘철들어서 효도할만하니 돌아가신다’는 옛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오늘 오후에는 오랜만에 영화 “국제시장”을 아내와 나란히 앉아 보면서 그 옛날을 되새기면서 눈물이 저절로 흘러내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 새 내 나이가 80을 바라보게 되는구나! .....
201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