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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18 11:51
교황이 바뀌었다, 가톨릭이 달라졌다
 글쓴이 : 하늘빛
조회 : 10,808  

[바티칸을 가다](1) 교황이 바뀌었다, 가톨릭이 달라졌다

 원문 |입력 2014.07.15 22:18 |수정 2014.07.16 08:25 | 더보여zum 

 

프란치스코가 연 ‘개혁 교황’ 시대…로마엔 ‘순례객 특수’

“관광객 급증, 로마 경제 살렸다”…대중적 인기도 연예인 못잖아…50년 만의 ‘개혁 교황’에 가톨릭 안팎 기대

지난 6월 하순 어느 날 자정 무렵, 인천에서 뮌헨을 거쳐 로마 피우미시노 공항에 내렸다.

여름밤의 무더운 밤공기가 확 밀려왔다.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에 올랐다. 기사에게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물었다. 인심 좋은 얼굴의 그는 “교황은 훌륭한 분”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교황이 로마 경제를 다시 살렸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쓸쓸한 초상집 같던 교황청 분위기가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결혼식 잔칫집으로 바뀌었단다. 교황이 취임한 후 로마에 오는 순례객 숫자가 베네딕토 16세 재임 시절보다 배 이상 늘어났다. 항공사, 여행사를 비롯해 호텔, 식당, 기념품 가게, 택시 등 여행 관련 업체들이 모두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한마디로 지금 로마는 교황 특수를 누리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전 베드로 광장에서는 교황 일반알현이 열린다. 여러 나라에서 온 수십만 순례객들이 광장에 모여 교황과 함께 기도하고 교황의 설교를 듣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뒷모습)이 차를 타고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고


다음날이 마침 수요일이었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 베드로광장에서는 교황 일반알현이 열린다. 여러 나라에서 온 수십만 순례객들이 광장에 모여 교황과 함께 기도하고 교황의 설교를 듣는다. 그 절정은 교황이 차에 타고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로 지나갈 때다. 유명한 연예인들보다 교황의 인기가 조금도 덜하지 않다. 마이크를 타고 전해지는 교황의 목소리에는 기침 소리가 자주 섞인다. 교황은 만 78세다. 저런 고령의 건강상태로 8월 중순 4박5일의 빽빽한 방한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드디어 교황의 차량 행렬이 시작되었다. 여기저기서 터지는 환성과 수많은 휴대폰 및 카메라 세례들. 군중에 밀려 아쉽게도 교황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을 수는 없었다. 숙소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사진에 찍힌 교황의 뒷모습이 오히려 묵상 주제가 되었다.

평범한 로마 시민들이 교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이탈리아 경찰에게 요즘 로마에서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물어보았다. 순례객의 숫자도 크게 늘어났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답한다. 교황청을 보는 눈빛이 안타까움과 걱정에서 자신감과 희망으로 확 바뀌었단다. 베네딕토 16세 재임 시절 각국에서 터져나온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바티칸 문서가 외부로 새어나간 이른바 바티리크스, 교황청 은행 비리 등으로 교황청에 바람 잘 날이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가톨릭교회를 비난하였고 가톨릭 신자들은 충격과 자괴심에 말을 잃었다. 겨우 2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그런데 겨우 교황 한 사람 바뀌었다고 가톨릭교회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가. 개혁교황 한 사람의 비중이 이토록 큰 것일까. 신학에 입문한 지 30년이 다가오는 필자에게도 이런 질문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 변화의 이유와 파장을 어디서부터 추적해야 하나. 성서를 모르면 예수를 알 수 없다. 교황을 몰라도 예수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교황을 모르면 가톨릭교회를 알 수 없다.

가톨릭 역사에서 개혁교황의 탄생은 아주 드문 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요한 23세 사망(1963년) 이후 50년 만에 나타난 개혁교황이다.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취임부터 2013년 베네딕토 16세 사임 때까지 35년의 이른바 보수교황의 시대가 끝나고 개혁교황의 시대가 열렸다. 말하자면 가톨릭교회에서 엄청난 세력교체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던 교회 안팎의 배경, 의미와 파장이 아직 한국사회와 교회에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해하는 것은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도 우리 시대의 상황과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중 하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최초의 남미 출신 교황이자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출세의 지름길인 로마유학을 하지 않았다. 권력과 명예를 탐내서는 안되는 전통을 지닌 예수회 소속으로 계속 교회 주변부에 머무르고 소수파에 속하다가 드디어 교황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예수회는 루터시대 종교개혁에 대응하기 위해 스페인의 이냐시오 로욜라가 세운 남자수도단체다. 교육과 선교를 핵심으로 내세우는 예수회는 교황에 대한 절대 충성을 기본으로 삼았다. 또 정치권력의 잘못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전통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예수회는 교회 안팎에서 언제나 주변부에 머물렀고 많은 오해와 박해를 받아왔다. 그래서일까. 지금껏 예수회 소속의 교황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사정이 변했다.

2005년 교황선거에서 라칭어 추기경에 맞섰던 두 후보인 이탈리아의 마르티니 추기경, 아르헨티나의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모두 예수회 소속이었다. 베네딕토 16세가 사임했을 때 가장 유력한 후보는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이었다. 더구나 전임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산적한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비판에 직면하였고, 보수파에는 마땅히 내세울 후보도 없었다. 이탈리아 추기경들은 분열되어 있었다. 득표에서 유리한 상황에 있었던 베르고글리오 추기경은 교황청 개혁의 임무를 짊어진 채 교황 자리에 올랐다.

<바티칸 | 글·사진 김근수 평신도 신학자>


출처- 산북성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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