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 속 가을 성묘 풍경을 보면서
가을 비 치고는 꽤 많은 비가 오는 가운데 천안공원묘지로 성묘를 간다 미리서 날을 잡아 놨기 때문에 우천불구하고 일찌감치 출발해서 가게 된 것이다 박사가 셋이 있는 집인데 날을 잡아 놓았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려워서 강행하게 된 것이다 친가 외가 식구 스물 댓명이 행여나 그쳐주길 바라면서 고속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그전에도 천안 가니까 비가 그친 적이 있었지 ...’ 차안에서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간다
그런데 오늘은 도착해 보니 그치기는커녕 한 여름비처럼 꽤 많은 비가 온다 큰 골프 우산을 겹겹이 받쳐들고 제수를 진설하는데 여간 어러운 일이 아니다 바닥 잔디가 흠뻑 젖었으니까 그냥 서서 절을 올리기로 하였다
우리 집안 장손인 나는 처갓집 제사도 30여년간 집사를 해온 터라 오늘도 집전을 하는데 의논 끝에 ‘그냥 서서 절을 올리기로’ 하였다 손자 여럿이서 겹겹이 우산을 받치니 제상은 어지간히 비를 가렸지만 절꾼들은 비를 빗겨 맞으면서 절을 선채로 올렸다 서열에 따라 <그룹>으로 아홉 차례 잔을 올리고선 제례를 빗속에서 마쳤다 그야말로 이런 제사 풍경은 내 생전 처음이다 그래도 절을 올리고 돌아서는 제사꾼들은 마음이 흐뭇하다 ‘어쩌면 제사를 못 지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비가 왔기 때문이다
지붕이 있는 정자를 찾아서 ‘아점’을 차렸다 장소가 좁아서 당숙 댁 식구는 다른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단골 <메뉴>인 매운 찌개를 끓이는 동안 제주로 음복을 한다 가을 비가 내리니 혀 끝에 전해지는 정종 맛이 한결 좋다 열댓명이 옹기종기 붙어 앉아서 왁자지껄 웃음 속에 ‘핏줄’이 땡기는 인정이 오고 간다 오랜만에 찌개에 밥을 말아서 먹는데 얼큰한 김치를 얹어서 먹으니 그 또한 별미여서 평소보다 많은 밥을 뚝닥 다 비웠다
각 집에서 가져온 그릇과 <개스 바너>등 짐을 챙겨서 출발 준비를 한다 이미 익숙해진 솜씨대로 척척 이다 출발 전 인사를 마치고는 각각의 방향으로 차를 논아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 번 화제는 <스페인>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막내네 얘기로 화제가 만발이다 잔소리로 머리가 아픈 아빠는 떼어놓고 엄마하고 딸이 같이 간다는데 아버지가 밥을 열흘이나 해 먹어야한다니 그게 큰 걱정이란다 ‘그러길레 평소에 좀 잘 하지 ...’ 옆에서들 눈총을 준다
분당에 들어서니 비가 거의 그쳤다 짐을 다시 논아 싣고 집엘 오니 마음이 시원하다
‘오늘 행사를 이 비 속에 어떻게 하나 ...?’ 머리 속이 복잡하더니 개운해 졌다
가만 보면 이런 가운데 가족 간에 우애가 다져지고 정이 두터워지는 거 같아서 속으로 마음이 흐뭇하다
2013.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