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에야 비로소 이란 영화인 <천국의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역시 소문대로 아주 따뜻하고 풋풋한 내용이어서 보는 내내 즐거웠다. 그리고 특히 부모와 아이들과의 관계가 잘 묘사된 점이 내 주의를 끌어당겼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9살 정도 된 ‘알리’(초등학교 3학년)는 공장에 다니는 아버지와 몸이 아파 고생하는 어머니 그리고 귀여운 여동생인 ‘자라’와 함께 살고 있다. 알리의 아버지는 고지식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하지만 방세도 제때 못 낼 정도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궁핍함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알리와 자라를 아주 순수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진 아이들로 묘사하고 있다.
남매를 힘겨운 시련으로 몰아넣는 사건의 발단인 ‘잃어버린 자라의 구두’를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여자애가 신고 있는 것을 발견한 알리와 자라는 그 여학생의 집으로 찾아간다. 아마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구두를 돌려받으려고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남매는 구두를 돌려달라는 얘기를 하지 못한 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다가 힘없이 터덜터덜 돌아오게 된다. 왜냐하면 그 여학생의 아버지는 행상을 하는 장님이었고 그 아이의 집안형편이 아주 어려운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자기들이 곤란을 겪을지언정 장님 아버지를 둔 아이로부터 신발을 돌려받을 수는 없어서였을 것이다.
이 아이들의 착한 마음씨는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여러 설명들이 가능하겠지만 아마도 부모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알리의 어머니는 쪼들리는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스프를 끓이자 제일 먼저 한 그릇을 담아 알리를 시켜 이웃에 있는 늙은 노인 내외를 대접하는 예의바르고 인정 많은 여성이다. 물론 이런 행동은 알리 아버지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했을 터이니 부부가 모두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그들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알리와 자라의 마음씨가 나쁠 수는 없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 알리의 성품은 정말 붕어빵처럼 아버지를 닮아있다.
그렇다면 알리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인가?
첫째, 도덕적이고 성실한 사람.
- 장면 1 : 어떤 사람이 알리의 아버지에게 종교행사에 쓸 수 있도록 설탕을 작게 부수는 일을 맡긴다. 큰 설탕덩어리를 차를 마실 때 넣을 수 있도록 각설탕처럼 잘게 부수는 일이다. 알리의 아버지는 방 안에다 설탕 덩어리를 놓고 망치로 그것을 깨고 있었다. 그때, 자라가 차를 갖다 드리자 아버지는 “자라야, 설탕도 넣어야지”라고 말한다. 자라가 눈앞에 가득 쌓여있는 설탕더미를 가리키며 “여기 많잖아요”라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자라에게 “이건 예배 때 쓸 거야. 우리 게 아니란다”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알리의 아버지가 비록 설탕 한 개라 할지라도 자기 것이 아닌 물건에는 손을 대지 않는 정직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 장면 2 : 공장에서 일을 하던 알리의 아버지는 우연히 정원을 가꾸는 연장들을 얻게 되자, 주말을 이용해 정원사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아들을 자전거에 태우고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먼 길을 떠난다. 그러나 구체적인 계획도 없고 말주변도 없는 알리의 아버지는 무턱대고 부잣집의 벨을 누르고는 “누구세요”라는 물음에 “카림입니다?”라는 황당한 대답을 해버린다. “카림? 누구 찾아요?”라는 물음에는 다시 “아무도 안 찾아요.”라고 대답하니 정원사 일은 커녕 수상한 사람으로 의심을 받아 도망칠 수밖에. 두 번째 집에 가서도 아버지의 이런 어눌한 대화는 계속된다. 이를 보다 못한 우등생 알리는 아버지를 대신해 이렇게 말한다. 저희는 “정원사인데, 나무에 약도 치고 잡초도 뽑아요, 가지도 치고요.” 비록 “우린 필요 없다”라고 거절을 당했지만 알리의 똑똑한 말솜씨를 보는 아버지의 기분은 하늘을 날 듯 하다. 말을 끝낸 알리가 흰 이를 가득 드러낸 채 즐겁게 웃고 있는 아버지를 쳐다보며 활짝 웃자 알리의 아버지는 감동에 겨워 “정말 똑똑하구나”라고 진심어린 칭찬을 해준다. 이 장면에서 비쳐지는 알리와 아버지의 밝은 웃음은 정말 잊기 어려운데, 그것은 ‘아버지-아들 관계’가 어떠한지를 너무나 잘 말해주고 있다. 알리의 아버지는 영특한 아들을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고 스스럼없이 칭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기에 알리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아버지들 중에는 아들에 대한 평가나 칭찬에 인색하거나 심지어는 비난을 해대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런 점에서 알리는 참으로 다행스럽다.
- 장면 3 : 큰 집에 외롭게 있던 어떤 꼬마가 알리와 놀고 싶어서 자기 할아버지를 조른 덕분에 알리의 아버지는 정원 일을 하게 된다. 조금도 한 눈 팔지 않고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을 하는 아버지의 노동에 감복한 그 꼬마의 할아버지는 일당을 후하게 준다. 그러자 알리의 아버지는 돈을 세어보고는 “너무 많은데요”라고 말한다. 이 장면 또한 알리 아버지의 정직한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거짓말과 나쁜 짓을 모르는 솔직하고 정직한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알리 또한 비뚤어진 데가 없이 도덕적이다.
둘째, 친절하고 자상한 사람.
처음으로 시도했던 정원사 아르바이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아버지와 아들은 꿈에 부풀어 그동안 돈이 없어 사지 못했던 것들을 사는 얘기를 나누며 즐거워한다. 이때 아버지는 알리에게 묻는다. “넌 뭘 사고 싶니?” 그러자 동생의 구두를 잃어버려 온갖 고생에 시달리던 알리는 그 기회를 틈타 재빨리 “자라한테 구두 사주세요”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아버지는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알리를 기특하게 여기며 “그래, 네 것도 사주마”라고 말한다. 영화의 결론부에는 아버지의 자전거 뒤에 실려 있는 두 아이의 신발이 가까이 클로즈업된다. 아버지는 알리와의 약속을 잊지 않고 남매의 신발부터 사주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알리의 아버지는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친절하고 자상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알리도 마찬가지이다. 알리는 동생한테 화를 내며 윽박지르는 오빠가 아니라 친절하고 다정한 오빠이다. 알리가 달리기대회에서 다 헤진 운동화를 신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1등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동생의 구두를 새로 사줘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 아니었던가.
셋째,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
알리의 아버지는 나쁜 짓은 엄두도 못 낼 정도로 순할 뿐 아니라 소심하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정원 아르바이트를 위해 부잣집 대문을 기웃거리다가 개가 짖어대자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지고 알리와 함께 줄행랑을 치는 모습.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리막길에서 자전거 브레이크가 파열되자 알리만큼이나 겁을 집어먹고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 그야말로 알리의 아버지는 때때로는 큰소리를 쳐도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일 만큼 여리고 겁이 많은 사람이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이런 점은 알리에게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상황이 어려울 때면, 알리의 큰 눈에서는 눈물부터 줄줄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힘든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알리가 이 부분을 제일 많이 보완해야 할 것이다.
넷째, 고지식한 사람.
알리의 아버지는 성실하기는 하지만 융통성이나 순발력이 부족한 고지식한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천성적인 고지식함도 정원사 일을 구할 때 드러난 것처럼 부적절한 언어를 구사하는데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알리 또한 아버지를 닮아서 거짓말조차 뻣뻣하게 하는 우회로를 모르는 상당히 고지식한 아이이다. 달리기 대회의 1등 상은 트로피와 츄리닝 한 벌, 2등상은 트로피와 학용품 세트, 3등상은 트로피와 운동화였다. 영화의 주인공 알리는 잃어버린 동생의 구두를 봉창하기 위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반드시 3등을 해 운동화를 탈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리 쉬운가? 경기가 막판으로 치닫자 선두의 아이들은 엎치락 뒤치락 하며 한데 몰려 달리게 된다. 자칫 잘못 하다가는 3등은 커녕 열외로 밀려날 수도 있는 데다가 정신까지 혼미해진 알리는 무아지경에 빠져 혼신의 힘을 다해 결승점으로 달려갔다. 그러다보니···. 아뿔사! 알리는 그만 1등을 하고 말았다.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에도 알리는 ‘아! 운동화를 못 탔으니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으로 눈물만 줄줄 흘려댄다. 이 대목에서 알리 또래인 우리 집의 두 아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트로피나 츄리닝을 운동화와 바꿔달라고 하면 되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어쩌겠는가. 비록 아버지보다는 영리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알리는 그런 방법을 떠올릴 줄 모르는 고지식맨인 것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처럼 알리는 신통하게도 아버지를 빼닮았다. 이것은 알리에게 있어서는 유전적인 원인 이외에도 아버지가 충실한 역할모델이 될 수 있는 존재였음을 의미한다. 아버지에게 화가 나있는 아들도 부지불식간에 아버지를 모방하기 마련이니, 아버지와 관계가 좋은 알리가 아버지와 붕어빵처럼 닮게 된 것은 필연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약점만 보완한다면 그것은 알리의 인생에 크나큰 선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가난한 아버지
가난한 아버지들의 마음고생은 실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하고 사고 싶어하고 하고 싶어하는 것들을 가난 때문에 해줄 수 없는 부모의 아픈 심정을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아이를 향한 부모의 마음은 끝이 없는 법이라 재벌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로 경제력을 가진 한국의 아버지들도 이런 고통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아버지들을 더 괴롭히는 것은 물질적인 궁핍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 혹여나 아이가 열등감이나 부끄러움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가슴 타는 걱정이다. 돈을 잘 못 벌고 사회적으로도 출세하지 못한 아버지를 아이들이 부끄러워하고 그것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위축되고 열등감을 느끼게 된다면 아버지의 인생은 맥없이 무너져내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가난한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열등감이 심하고 성품이 나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정말일까?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거의 다 자신감이 없이 주눅이 들어있고 열등감과 질투심이 심한 건강하지 못한 사람으로 자라날까?
그러나 현실은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도 훌륭한 인격자가 나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진짜로 중요한 것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가난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이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게 일하며 도덕적으로 사는 아버지 그리고 자식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버지를 아이들은 결단코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반대로 용돈지갑을 항상 두둑히 채워주더라도 도덕적이지 못한 아버지 그리고 돈으로 자식을 키우려고 하는 아버지를 아이들은 부끄러워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버지들은 자신의 나태함과 부도덕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아이들의 눈치를 봐서는 안 된다. 그럴수록 아이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며 솔직하게 관계를 해나가야 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능력에 부치는 것을 사달라고 할 때, 괜히 화를 벌컥 내거나 다른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미안하다. 아빠도 정말 사주고 싶다만. 그걸 사줄 돈이 없단다”라고.
알리의 아버지는 자기가 일한 것 이상으로 일당을 주자 ‘너무 많다’고 말하는 정직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알리는 ‘아빠는 왜 저런 바보 같은 얘기를 하는 거야. 그냥 받아서 내 선물이나 사주지’라고 비난하는 대신 오히려 아버지를 존경어린 눈으로 올려다보지 않는가. 알리와 아버지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고지식하기는 하지만 성실하고 솔직하며 정직한 아버지, 눈부신 웃음으로 아들을 칭찬할 줄 아는 다정한 아버지, 자기의 처지와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에 아들을 자전거에 태워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데리고 갈 수 있었던 아버지.
이런 아버지를 어찌 미워하고 부끄러워할 수 있겠는가.
알리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나이를 먹으면서 ‘가난은 성실하고 착한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 이 사회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진리를 알게 되면 더욱 더 커질 것이다.
예전에 한 광고에는 청소부인 아버지를 도와 리어카를 밀어주고는 ‘아버지, 힘 내세요’라고 말하며 박카스를 내미는 아들의 모습이 등장한 적이 있다. 이런 뭉클한 장면이야말로 가난한 아버지들이 꿈꾸는 아들과의 행복한 관계가 아닐까?(그렇지만 중독성이 있으니 아버지에게 박카스를 자주 사드리면 안 된다).
이와는 반대로 가난을 지독하게 부끄러워하고 부자들을 부러워하며 그들 앞에서는 비굴하게 행동하는 돈밖에 모르는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끔찍한 상처를 안겨준다. 이런 아이들은 도저히 아버지를 사랑할 수도 존경할 수도 자랑스러워할 수도 없기 때문에 지독한 열등감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많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아이들이 아버지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과 부끄러움은 가난 그 자체가 아니라 가난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의해 좌우된다.
행상을 하는 장님을 아버지로 둔 여자아이가 자라가 떨어뜨린 탐나는 볼펜을 주워서 주인에게 돌려주는 바른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비록 거리행상을 하는 가난한 장님이지만 딸에게 스스럼없이 장난을 치는 친구같이 가까운 아버지이고, 돈이 생기자 딸의 구두부터 사주는 다정하고 자상한 아버지이며, 장애를 안고도 성실한 노동을 통해 살아가는 대바른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이 소녀와 알리 남매가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도 밝고 건강한 정서를 지닌 착한 아이로 자라나는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이 아이들이야말로 부유한 아버지를 두고도 우울하고 외롭게 자라는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가. 그야말로 가난한 아버지를 둔 <천국의 아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이 3D화면으로 열광한 지극히 상업적인 영화 '아바타' 나
반전이 거듭되는 스필버그 감독류의 자극적인 영화에 비교될 수 없는 마음정화제 같은 무공해 영화였습니다.
이런 따뜻한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역시 이란영화 '오프사이드'를 권합니다.
여자들의 축구장 출입이 금지된 이란에서 축구를 사랑하는 이란 여학생들의 '축구장 들어가기'가
아주 재미있게 그려져있는 코메디 영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