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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3-26 11:45
(3/27일자 평화신문) 주임신부님 게재글
 글쓴이 : 레지나
조회 : 16,805  
"일본 대지진, 함께 슬퍼하며 돕는 게 우선"

자연재해와 하느님을 묻다 - 성서학 박사 김건태 신부 인터뷰(수원교구 분당 이매동 성바오로본당 주임)



김건태(수원교구 분당 이매동 성바오로본당 주임, 사진) 신부의 사제관 문을 두드렸다. 안타까움과 새삼 심해지는 갈증, 그리고 누군가의 입을 빌어서라도 빨리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 조바심 때문이다.

 일본을 강타한 대지진과 쓰나미. 믿기지 않는 자연의 파괴력에 인간은 무력하기만 하다. 개신교의 유명한 목사는 이를 두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에 대한 하느님 경고"라고 말해 파문이 일었다. 여기에 누리꾼들은 비난을 퍼부으며 "당신들이 믿는 하느님은 선하신 분인데, 왜 이런 재앙을 허락하는가?"하고 묻고 있다.

 김 신부는 파리가톨릭대에서 에제키엘과 아모스 등 구약시대 예언자들의 '법과 정의'를 연구한 성서학 박사다.

 김 신부는 결론부터 내놨다. "구약의 참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에 빠졌을 때 위로와 희망을 주고, 분열이 일어났을 때는 일치의 길을 보여줬다"며 "지금은 일본인들이 겪는 고통 속에 계신 주님을 보면서 기도와 후원으로 그들을 돕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통(자연재해)과 하느님'이라는 거대 담론을 갖고 김 신부와 나눈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엄청난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인간 이성(理性)의 법정에 세우려고 한다. 인도네시아 쓰나미, 아이티 대지진 때도 그랬다.

 "어디 자연재해뿐인가. 불행이 엄습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런 죽음에도 하느님을 원망하며 이유를 묻는다. 하느님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성의 법정에 끌려나와 추궁(?)을 당하신다. 고통과 하느님 선성(善性)은 늘 제기돼 온 문제다. 하지만 신학과 철학은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만한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하느님 경고' 운운하는데는 동의할 수 없다. 비통에 잠겨 있는 피해지역 주민들이라면 모를까, 제3자가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아울러 자연재해 앞에서 신을 책망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신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하느님은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멸망처럼 놀라운 자연현상을 통해 당신 뜻을 드러내시지 않았는가.

 "맞다. 하지만 모든 자연현상을 하느님 뜻이요, 개입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지질학적으로 보면 지진은 지각판이 움직이는(판구조운동) 것이다. 판구조운동은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지만 한편으로는 화산활동으로 땅속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으로 내뿜어 지구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준다고 한다.

 구약은 오랜 세월 구전돼오다 BC 10세기 솔로몬왕 시대부터 글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창세기 저자들은 당시의 숱한 자연현상을 하느님 징벌 또는 개입으로 판단했다. 고구려인들도 달무리 현상에 놀라 땅에 엎드려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 않았는가. 지구는 살아 숨쉬는 거대한 생명체다."

 -구약의 욥이 극심한 고통에 절규할 때 그의 세 친구들은 하느님께 벌 받은 것이라며 회개를 종용하던데.

 "명백한 잘못이다. 욥기를 다시 읽어봐라. 주님은 욥을 구원하신 뒤 세 친구 가운데 한 명인 엘리파즈에게 '너와 너의 두 친구에게 내 분노가 타오르니, 너희가 나의 종 욥처럼 나에게 올바른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욥 42,7)하고 꾸짖으셨다. 진정한 친구라면 욥의 고통을 위로하며 도울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세 친구 주장을 이해하려면 고대 근동 사람들의 인과응보 사상을 살펴봐야 한다. 그들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런 관념으로 하느님 뜻을 헤아렸다. 그러나 그게 하느님 정의라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 없다.

 '노아의 홍수' 사건에도 흥미로운 구절이 있다. 주님께서 홍수가 끝나자 '사람의 마음은 어려서부터 악한 뜻을 품기 마련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으리라. 이번에 한 것처럼 다시는 어떤 생물도 파멸시키지 않으리라'(창세 8,21)하고 생각하셨다는 기록이다. 주님께서 후회를 하셨다는 건데, 자신의 행위에 후회를 하시는 분을 어떻게 절대자라고 말할 수 있나. 창세기 저자들이 그렇게 해석해 기록한 것이다."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인가.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어느 의사가 불임(不姙) 원인 10가지 가운데 9가지를 해결한 뒤 나머지 1개를 들여다보니까 거기서 또 10개 원인이 튀어 나오더라며 하느님의 생명창조 신비에 감탄했다. 그렇다고 하느님을 신비의 영역에만 모셔둬서는 안 된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성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셨기에, 우리는 신앙을 전제로 한 이성을 발휘해 그분을 더 명확하게 알아가야 한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사건만 하더라도 중세교회는 지동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때 성경해석과 교리는 지구가 우주 중심에 정지해 있는 거였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코헬렛 1,4)라는 말씀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과학이 지동설을 명백히 입증해냈다. 그래서 교회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갈릴레이를 복권시켰다. 신앙과 이성은 함께 가는 것이다."

 -참 예언자로 살아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하나.

 "예언자 에제키엘은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 유배의 고난을 조상 탓으로 돌리자 '너희는 어찌하여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는데, 자식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을 말해 대느냐?'(에제 18,2)는 주님 질책을 전했다.

 예언자는 고난을 당하는 사람에게는 위로와 희망을 전하고, 불의가 만연한 곳에서는 정의를 외치고, 분열이 일어나면 일치를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 예언자는 점쟁이가 아니다. 지금 종교 지도자들이 해야 할 일은 국민들이 일본인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권하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은 가장 가까운 이웃이다.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는 것은 신앙을 떠나 인간의 기본적 도리다."

 김 신부는 또 "인간은 자연재해로 인한 고통에 직면해서는 하느님을 찾으면서 왜 물, 공기 같은 혜택은 당연한 것인양 감사하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당연한 것은 없다. 인간이 보고, 듣고, 걷는 게 당연한 일인가? 병원 수술실이나 중환자실에 가봐라. 그건 당연한 게 아니다. 매사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본을 도와야 한다. 그러면 훗날 한일 관계도 좋아질 것이다."

 김 신부는 1981년 사제품을 받았다. 파리가톨릭대에서 박사학위(87년)를 받고 돌아와 오랫동안 수원가톨릭대에서 사제를 양성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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