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스코는 자신이 교육하는 소년들이 미래에 '이러한 모습이 되었으면'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함께하는 젊은이들이 "정직한 시민, 선량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여
궁극적인 삶의 목적, 즉 성화를 이루어 성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돈보스코의 교육적 이상은 그의 뇌리와 마음 안에만 숨겨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교육의 결실, 그가 바라는 젊은이들의 모범적인 미래상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형태로 그 앞에 나타났습니다.
돈보스코의 교육적 모델, 모든 젊은이가 그러한 모습으로 성장했으면 하고
돈보스코가 바랐던 그 이상형이 바로 오늘 우리가 축일로 지내는 '도미니코 사비오'성인이십니다.
오늘부터 며 칠간 도미니코 사비오 성인의 삶을 묵상하며 우리도 성인이 되기를 결심합시다.

도미니코 사비오는 1842년 4월 2일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인근의 작은 마을에서
카를로 사비오와 브리지타 사비오의 아들로 출생했습니다.
사비오의 부모는 '무리알도'(Murianldo)라는 곳에서 생활하다가
1841년에 '리바'(Riva)라는 작은 마을로 옮겨 와 살았고 그곳에서 사비오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사비오가 두살 되던 해에 그들의 고향인 '무리알도'로 다시 거처를 옮겼는데
이 곳은 '아스티의 가스텔누오보'(Castelnuovo d'Asti)라는 지방의 변두리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 지방은 돈보스코가 출생한 곳이기도 합니다.
도미니코의 부모는 어려서부터 도미니코가 훌륭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시켰습니다.
이러한 교육 덕분에 도미니코는 네 살때 이미 스스로 기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때때로 그가 깊은 침목과 고독 가운데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돈보스코는 도미니코 사비오에 대한 전기를 손수 집필해서
그가 교육하는 청소년들이 도미니코 사비오를 그들 삶의 귀감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사비오의 전기에서 돈보스코는 그의 부모님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 소년이 집에 있을 때 어떻게 어머님을 도와 일을 했으며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어떻게 기쁨으로 맞이하였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전기에 따르면 사비오는 식사기도를 포함한 모든 기도를 거르지 않았으며
심지어 잊고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기도하도록 권하기까지 했습니다.
지오반니 주카 (Giovanni Zucca) 신부는 돈보스코에게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습니다.
그는 도미니코 사비오가 다섯 살 때 무리알도 지방의 사목구 담당신부였습니다.
그는 도미니코 사비오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도미니코가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함께 규칙적으로 성당 미사에 참례했고
성당 문이 열리기 전에 성당에 도착하기라도 하는 경우에는
비가와서 땅이 질퍽할 때나 눈이 와서 추울 때에도
성당 밖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할 정도로 열심한 꼬마였기 때문입니다.
주카 신부는 또한 총명함과 더불어 성실함까지 겸비한 사비오가
마을 학교에서 날로 훌륭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돈보스코에게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 그릇된 행동을 하는 친구들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고
그들의 행동이 왜 잘못된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 그는 이미 미사 복사를 시작했으며
매일 미사에 참석하려고 노력했고 정기적으로 고해성사를 보았습니다.
이러한 그의 품행 덕분으로 그는 이른 나이에 첫영성체를 할 수 있는 허락을 받았으며
성체에 대한 크나큰 공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12세가 되어야 첫영성체를 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사비오가 다니던 본당의 주임신부님은 사비오에게 이른 나이에 첫영성체를 허락하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그는 여러 다른 신부님들의 조언을 들은 후에 당시 7세였던 사비오가 첫영성체를 하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사비오는 이미 교리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고 성체성사의 의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비오는 기도와 영적독서를 통해 그의 첫영성체를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첫영성체 날이 되자 그의 어머니께 자신이 범했을지도 모를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한 후에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돈보스코는 그가 집필한 사비오의 전기에서 이 날의 기억에 대해 한 장 전체를 할애했습니다.
돈보스코는 몇 해 후에 도미니코 사비오가첫영성체 날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언제나 쁨에 넘쳐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고 전합니다.
"그 날이 제 생애 있어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멋진 날이었어요."
사비오는 그의 첫영성체 날에 작은 수첩에 그의 결심들을 적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살면서 그것들 몇 번이고 되읽었습니다.
돈보스코는 어느 날 우연히 이 수첩을 보게 되었고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의 결심. 1849년 첫 영성체 날에.
도미니코 사비오 (7세)
1. 자주 고해성사를 보고 고해신부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자주 영성체를 하겠다.
2. 주일과 축일들을 특별하게 보내겠다.
3 예수님과 성모님을 나의 친구로 상겠다.
4. 죄를 짓는니 죽음을 선택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