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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0-04 17:53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
 글쓴이 : 김요셉
조회 : 11,773  



오늘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축일입니다.
본당의 모든 프란치스코 형제님들과 프란치스카 자매님들께 영명축일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큰 행사를 위해 애쓰신 서인모 프란치스코 총회장님, 축일 축하드립니다!

프란치스코는 1181-82년 겨울, 부유한 포목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아버지의 많은 재산 덕분에 젊은 시절에 이미 부(富)와 쾌락과 명성(名聲)을 누렸으며, 동료들 사이에서 무절제한 선동자로 불려지기도 했었다.
18세 되던 해에 뻬루지아와의 전쟁에 참가하여 기사의 꿈을 실현하려 했지만, 불행히도 그 전쟁은 아씨시의 패배로 끝나고, 그는 뻬루지아인들에게 잡혀 1여 년 동안 포로생활을 하였다.
긴 회복기를 거치는 동안 깊은 영적 변화를 맞는다.
그리고 세속의 모든 생활을 청산하고 스스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다미아노 성당에서의 "나의 집을 고쳐라"라는 음성과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복음말씀을 따라 세속에서의 모든 생활을 포기하고 완전한 가난의 삶으로 귀의한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열정은 하느님을 향한 노래의 몸짓으로 이어져 리보또르또에서 그를 포함한 열 두 형제들을 구성하기에 이르렀고, 이것은 인노첸시오 3세 교황의 구두 인준을 통한 수도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뒤이은 그의 사도적 활동은 술탄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데까지 뻗어갔다.
그리스도를 그대로 닮기를 열망하던 그는 죽기 2년 전인 1224년 9월 17일, 라 베르나 산에서 그리스도의 거룩한 상처를 상징하는 오상(五傷)을 받았다. 그 날부터 세상과 모든 피조물은 프란치스코 안에서 더욱 새롭게 변화되었다:
"모든 피조물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선하심에 깊은 애정을 느꼈다."

성인은 모든 자연 만물에게 자신들을 창조한 주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이끌었다. 그리고 모든 자연을 형제 자매라고 불렀던 것이다.
1226년 10월 3일 저녁 프란치스코는 뽀르치웅꿀라로 돌아와 형제들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마지막 시편을 낭송했다 "소리 높여 당신께 부르짖을 때 이 호소를 들으소서...". 그리고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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