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은 대림절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주제이다.
인생이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은 누구인가?
그분을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사야에 의하면 우리가 기다리는 분은 주님의 영이다.
그 영은 "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한다.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주고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줄 것이다.
그의 말은 몽치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그의 입김은 무도한 자를 죽일 것이다"(이사11, 3-4)
이사야의 이 말은 우리가 겉만 보고 재판하고,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고자 하는 세상에 살고 있음을 암시한다.
가난한 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재판하고 천민의 시비를 가려 준다면서
그들을 억울하게 만드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가 되어
약한 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잡아먹는 세상,
서로에게 살무사가 되고 독사가 되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이사 11,5-9).
우리는 이런 세상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임마누엘이 오시면 이런 세상이 끝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 임마누엘은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시는" 분(53,4)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다리던 그분은 사실 우리 가운데 오시어 우리 가운데 계신다.
다만 세상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 주고,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 주시는" 그분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그분이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 자기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를 성하게 해 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 우리의 병을 고쳐 주고" 있건만 (53,4-5)
세상은 이를 보지 못하였다.
우리의 인생은 임마누엘을 맞이했으면서도 다시 대림으로 이어진다.
서로 함께 있어 주지 못하고,
서로 대신 앓고 서로 대신 고통을 겪어 주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계속 어둠과 죽음의 그늘 아래 앉아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은 끝이 날 때까지 대림절의 연속으로 이어진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 밑에 앉아 촛불을 하나 하나씩 밝혀가며
우리는 기도한다.
"주님, 그의 아픔을 제 아픔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가 앓는 병을 제가 앓게 하여 주십시오.
나는 몰골이 되어도 좋으니 제발 그만은 행복하게 하여 주십시오."
함께 있어 줄 사람이 있다면,
대신 병을 앓아 줄 사람을 가졌다면
그들이 앓는 병을 앓을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어둠을 비추는 그리스도가 되어 있는 것이다.
- 이제민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