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티매오는 길가에 앉아 있습니다.
구걸하는 걸인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는 지금 고정되어 있고 생계를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들고는
자신이 갈 수가 없으니 크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눈을 뜨게 해달라는 부탁이 아닙니다.
‘메시아가 불쌍한 이스라엘 사람을
그냥 두고 갈 수가 있습니까?’
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바르티매오의 강하고 신뢰에 찬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으며 그를 방해합니다.
그러나 그는 더 크게 외칩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를 불러오너라.”라고 하십니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해 보이십니다.
그러자 맹인은 겉옷을 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달려왔습니다.
그가 던져버린 겉옷은
구걸하기 위해서 앉아 있을 때
먼지를 막고 잠잘 땐 이불로 사용하던
그의 전 재산입니다.
자기 생존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젠 필요 없습니다.
그는 ‘저분이 나를 고쳐주실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않아도 된다.’
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가진 것이 적으니까 버리기도 쉽습니다.
부르심을 받고도 따르지 않았던 부자청년과 대조가 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라고 예수님께서 물으시자,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청합니다.
‘스승님, 당신을 따르고 싶은데
볼 수가 없어서 따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라는 뉘앙스를 지닌 말입니다.
정말 눈물겨운 장면입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성경에 나오는 치유 이야기에는
반드시 믿음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 따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사람들이 갖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께 나아오면서 보여준 태도에서
그리고 확신에 찬 요구를 통해서
바르티매오의 강한 믿음을 확인하신 예수께서는
단순히 눈을 뜨게 해 주신 것이 아니라
구원을 주셨습니다.
참된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곧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지금까지는 다른 사람에 의존해서 길을 갈 수가 있었지만
이제 예수님을 보고 그분의 뒤를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를 주셨지만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따릅니다.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예수께 구속된 것입니다.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보면 바르티매오가 사도들보다 더 낫습니다.
사도들은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기에
지금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르티메오는 이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분명히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따르면서
“주님께서 저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못 견디게 기뻐하나이다.”
하고 노래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그런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활 중에 어려움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시련에 놓여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을 잘 돌아봐야합니다.
내가 당하는 시련이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바르티매오가 보여준 확고한 믿음을
우리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을 굳게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주신 것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가 없는 것,
바로 부활하신 당신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진리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때는 우리도 자신 있게,
“주님께서 저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저는 못 견디게 기뻐하나이다.”
하고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봉봉 신부님의 글에서-
" 주기도문 (플륫) by Juli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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