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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5-02-10 00:00
re: 청소년이 바라보는 성당의 문제점
 글쓴이 : 김스테파노
조회 : 9,535  
<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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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DY, TR, TH, TD { FONT-SIZE:9pt; FONT-FAMILY:굴림; }
  P { 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FONT-SIZE:9pt; FONT-FAMILY:
굴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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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DY leftMargin=8 topMargin=4>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아래 내용은 예물 봉헌이란 주재하에 나기정신부님께서
기고하신글을 퍼와보았습니다.</FONT></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아래 내용을 보면 봉헌이란 자기자신을 전부 바치는 것이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온몸을 다드릴수 없기때문에 예물을 준비하여 동참한다고 하시는군요.</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예물이 미사중의 절차상이 아닌 자기자신을 봉헌 한다는 마음 가짐을 갖고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 하겠지요.</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현재 9:00미사에는 신자들의 기도를 하시는 4분이 미사예물 봉사를
하시고  별도로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11시 미사의 경우에는 여러교우분들이 많으므로 자발적인 봉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 교회는 봉사하는 분이 별도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로 누구나
하실수 있는다고 생각합니다.</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편리함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미사에 참여 하는 마음의
정성과  베풀어줌을 받는 봉사보다는 내가 참여하고 봉사하는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SPAN>
<DD><SPAN style="FONT-SIZE: 10pt"> 나자신의 편리함을 위함이아닌 공동체를 위하는 일인데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면  이번과 같은 제언이 필요하고 또한 그러한 것을 위한  봉사에 직접 참여 해주시는 것도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해 봅니다. </SPAN></DD>
<P><SPAN style="FONT-SIZE: 10pt"></SPAN> </P>
<P><SPAN style="FONT-SIZE: 10pt">전례봉사를 하고 있는 한사람으로  글주신 분의 이 제언은 어떤
면에서는 무척이나 큰 의미가 있는 제언 같이 생각되는 군요.</SPAN></P>
<P><SPAN style="FONT-SIZE: 10pt"></SPAN> </P>
<P><SPAN style="FONT-SIZE: 10pt"> 전례분과위원 회의시 함께 논의 토록
하겠습니다. </SPAN></P>
<P><SPAN style="FONT-SIZE: 10pt"></SPAN> </P>
<P><SPAN style="FONT-SIZE: 10pt"></SPAN> </P>
<P><SPAN
style="FONT-SIZE: 10pt">==============================아   
래 ===============================================</SPAN></P>
<P><SPAN style="FONT-SIZE: 10pt"></SPAN> </P>
<P><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① 교회는 먼저 믿는 이들이 모여야
한다.</FONT></SPAN> 모여서 친교를 나눈다. 친교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교회가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때, '친교를 나누는
공동체'란 말은 신약성서에서 'Koinonia'라고 한다. 함께(koi) 모인 것(nonia)이란 뜻이다. 교회 모습의 구심적
움직임이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P>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② 교회는 또한 나누어야 한다. 확산되고 흩어져야 한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고 필요한 이들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고 영향을 미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곧 '봉사하는 공동체'이다. 성서에서 이것을
가리켜 'Dia-konia'라 한다. 확산하여(dia) 나눈 것(konia)이란 뜻이다. 교회 모습의 원심적
움직임이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이렇게 교회의 모이는 모습과 확산하는 모습, 두 가지
방향의 운동은 미사 전례 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성찬 전례를 시작하는 예물 준비, 특히 봉헌 예식에서 이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의
백성이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고 화답하였다(말씀 전례). 성찬 전례를 시작하면서 예물을 준비한다. 예물을 준비하는 것은 봉헌의 의미도
있지만, 식탁을 차리고 준비하는 것이 원래의 의미이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그렇다면 '예물 준비'에서 '예물 봉헌'의 의미가 더
강조되었을까? 처음에는 그리스도께서 최후 만찬에서 행하셨듯이 '빵과 잔을 들고'감사기도를 드리신 것에 따라, 빵과 포도주와 물을 제대로 가져갔던
동작이었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그러다가 4세기경부터는 교우들이 많아지고, ① 빵과
포도주뿐 아니라 ② 가난한 이들을 돕고 ③ 성직자 생활 부양과 교회 운영에 필요한 예물을 갖고 오게 되었다. 그래서 예물 준비 행렬이 길어지고
봉헌의 의미가 점차 강조되기 시작했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11세기 이후부터는 화폐제도가 발달하여 예물 봉헌이
헌금으로 바뀌고 심리적인 이유와 신학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예물 준비'를 '제물 봉헌 행사'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17세기에는 아예 '봉헌
예식'이라고 불렀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그렇다고 예물 준비의 뜻만 있고 '봉헌'의 의미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물을 준비하면서 바치는 제물은 교우들이 봉헌하는 예물이 아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이다. 그것은
뒤따라오는 감사기도에서 십자가의 제물로 축성되어 '봉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물 준비에서 신자 각자의 위치에서는 '봉헌을 준비하고 참여'하는
것이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미사에 참석한 교우들은 '예물 준비' 예식에서
예물(헌금)을 드림으로써 '봉헌하게 될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을 나타낸다. 봉헌은 자기 자신을 전부 바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나의 '온몸'을 다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예물을 드림으로써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봉헌에 동참한다. 자신을
바친다는 정성과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또한 마음을 모아 봉헌하기 위해 예물 준비 동안 '봉헌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이렇게 마음을 모아 드리는 신자들의 (예물) 봉헌은,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① 빵과 포도주를 드림으로써 그리스도의 봉헌에 참여하고, 헌금을 함으로써 ② 가난한 이들을 돕고 ③ 성직자 생활 부양과 교회
운영을 위한 것이 된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여기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이다. 교회는 모이는 일, 모여서 주님을 찬미하고 감사하며 '친교'를 나누지만, 이 나눔의 공동체는 결국 '봉사'하는 교회임을 말해준다.
교회 운영이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를 돕는 일'이 먼저 해야 할 일임을 말해주고 있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가난'이란 표현은 물질에 관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무엇을 필요로 하는 이들 모두'를 가리키기도 한다. 교회가 모여서 친교를 나누는 구심적인 움직임뿐 아니라, 이웃에 봉사하고
나누는 '원심적인 노력'들이 필요하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예물을 준비하는 동안 봉헌 노래를 부르면서 '봉사하는
교회'가 되기를 다짐해 보자. 이 시대가 이 점을 필요로 하는 때이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
<DD><SPAN style="FONT-SIZE: 10pt"><FONT face=굴림 color=#383858>[이글은 대구대교구 나기정
신부님께서 경향잡지(1998년 8월)에 기고하신 글입니다.]</FONT></SPAN><FONT face=굴림>
</FONT><BR><BR><BR><BR>☞ 애국청소년 님께서 남기신 글 </DD>
<HR>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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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안녕하십니까? 저는 하느님을 찬양하려고 노력중인(?) 한
카톨릭 신자입니다.</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물론 본당은 이곳 바오로 성당이고요...</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지난주 미사때, 제가 느낀 바오로 성당의 문제점을 꼬집어보자
합니다.</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꼭 이것이 바오로 성당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카톨릭
사회 전체가</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가지고 있는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2월 6일 9시에 저는 미사에 드리기 위해 나갔습니다. 저는
아직 청소년이기에</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청소년미사에 나가는 것이 마땅하지만, 중요한 시간이 겹치는
바람에 일찍</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나가게 되었습니다.</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성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던 중, 봉헌의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그날따라</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어찌 신자들이 많은지 거의 11시 本미사를 방불케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런데</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사람들이 너무 많이 움직이면 시간소비는 물론이요,
움직일때마다 밀폐된공간에서</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먼지가 많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곳
봉사자분들께 '상황이 이런데,</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죄송하지만 바구니를 돌리는게 어떻겠느냐.' 라고
여쭤보았더니, 그냥도 아니고</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단호하게 '안돼요!' 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서는 하시는 말씀이,</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바구니는 11시 미사밖에 되지가 않습니다!.'저는 처음에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아니 아무리 어른이시고 남이지만 성당에 다니시는 신자로써 어떻게 냉철하게 대답해줄 수 있느냐 말입니다. 그렇게 단호한것은
그렇다 쳐도, 시스템자체가 유연성이 없는 것 아닙니까? 아니</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교황님께서 내린 미사지침에 봉헌할때 무조건 직접 나가서
내야한다는 규정도 없지 </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않습니까? 또한 있다쳐도, 11시 미사만 해당되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대목입니다.</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카톨릭이 물론 전통과 율법을 많이 중시하는 종교이기는
합니다만, 유연하지 못하게</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율법을 독불장군式 태도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같이 화목해야</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할 같은 교우들끼리 그렇게 냉철하게 되는것도 문제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 </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이러한 문제점을 신속히 개선하여 바오로 성당이 더욱
발전되었으면 좋겠군요..</P>
<P style="MARGIN-TOP: 0px; MARGIN-BOTTOM: 0px">그럼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P>
</BO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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