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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3-01-10 00:00
 조회 : 12,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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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4일 본당을 방문하시는
서울대교구 홍보실장으로 계시는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님의 글을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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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살아 계신 신부님
해마다 성소주일이 되면 어린 시절에 만났던 왕 레지날도 신부님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분은 독일에서 출생하여 분도회에서 사제수품을 받았습니다. 1950년대, 가난했던 우리나라 농촌의 작은 본당에 오셔서 사목하면서 학교도 세웠습니다. 신부님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공소에 오셔서 판공성사와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미사 후에는 독일 신자들이 보낸 옷가지와 구호물자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때 신부님은 어린 저에게 무엇을 갖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커다란 보따리 속에 있는 낡은 구두를 가리켰습니다. 이 후 그 구두는 오랫동안 저의 재산 목록 1호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왕 신부님과 저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한평생 헌신적으로 사목하시던 신부님은 안타깝게도 대장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을 떠나시기 얼마 전, 신부님은 마지막으로 고국을 방문하셨습니다. 그곳에는 가족과 친지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 큰누나는 수녀님이셨습니다. 누나 수녀는 병든 동생 신부를 잡고서 "동생은 한국이 그렇게도 좋은가. 한국의 어디가 그렇게 좋은가. 이제 나이도 먹고 병도 들었으니 그만 여기서 우리와 같이 살면 어떤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은 "누나, 나는 한국에 가야 해, 한국에서 살다가 그곳에 묻히기 위해서 한국에 돌아가야 해" 라고 대답하셨습니다. 1975년에 선종한 신부님은 왜관 분도 수도원 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분들 가운데서 일부는 순교하셨고 대다수의 분들은 왕 신부님처럼 한평생을 봉헌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나라에 와서 온 생애를 바치며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선교사들 가운데는 한국인보다도 더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분들은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의 친구로서 그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왕 신부님을 만났습니다만 지금은 여러 선교사들을 통해서 왕 신부님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착한 목자셨던 왕 신부님은 하느님 안에, 또 다른 선교사들 안에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 /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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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모 신부의 문화마당>`부끄러움`을 갖는 사람
'부끄러움’은 ‘양심에 거리껴 남을 대할 낯이 없는 느낌’을 말한다. 이같은 부끄러움은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사람은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면 남이 야단을 치기 전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교회에서는 양심을 하느님의 소리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산다면 잘못을 저지르는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양심도 매일 성찰하고 닦지 않으면 혼탁해져서 무디어지고 만다. 양심이 혼탁한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양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러도 부끄러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죽을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처신하는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지 잘못한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만 잘못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 가운데 많은 이가 부정과 부패와 같은 큰 잘못을 저질러놓고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경우가 있다. 그들 가운데는 죄나 잘못을 범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억울해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는 재수가 없어서 걸려들었을 뿐이라고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이들도 있다.
특히 누구보다도 사회적 책무가 큰 지도층 인사 가운데서 엄청난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으면서도 최소한의 부끄러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가 많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면서도 어느 사이엔가 부끄러움을 잊어버렸다. 부끄러움이 인간의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부끄러움을 잊어버렸다는 것은 인간성을 상실하였다는 말과도 통한다.
부끄러움은 단순히 소극적이며 부정적인 느낌만은 아니다. 오히려 부끄러움은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느낌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이같은 부끄러움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잘못을 저지르면 부끄러워 고개 숙일 줄 아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더욱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살면서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 하겠지만 만일 잘못했다면 최소한 부끄러워할 줄 아는 그런 문화가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
/정웅모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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