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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1-11 00:00
아름답게 떠나 갈 줄 알아야 합니다
 글쓴이 : 달바라기
조회 : 1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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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호스피스 사랑방(http://cafe.daum.net/hospice4u)에서 발송 받은 글입니다만 위령성월을 마지하여 좋은 묵상거리라 생각되어 옮겨왔습니다.<br><br></font></p>
<img src=http://images.awoollim.com/A_00059/img1.gif></img><br><br>
<font color=black size=2 face=굴림>

죽음도 삶의 한 과정입니다<br><br>
 
죽음(死)이라는 단어는 어느 누구든 결코 좋아하는 단어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죽음도 숙명적인 삶의 한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그 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죠.<br><br>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듯이 봄에 싹이 돋아나고 꽃이 피어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또 그 열매는 떨어 져야만 다음해에 새로운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br><br>

이렇듯, 인생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태어나면 살아가면서 늙게 마련이고 또 늙으면 병들게 마련이고 병들면 죽게 마련입니다.<br><br>

그러나 인간의 육신은 썩어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이라는 열매는 영원히 썩지 않고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영혼이라는 열매를 잘 맺게 하기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br><br>

사실 죽음이란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고 생각하기조차 싫지만 어누 누구나 때가되면 도리 없이 숙명적으로 찾아옵니다. 그러므로 거부한다고 그 길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br><br>

신앙적 사고로 볼 때,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아름답게 세상을 떠나가는 어느 외국의 할머니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br><br>

토니라는 콜택시 기사는 시내 어떤 주소로 가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도어 벨을 누르니 한참 있다가 문이 열렸고 거기에는 40년대 영화에서 나옴직한 복장에 모자까지 단정히 쓴 아주 나이든 할머니가 서 있었습니다. <br><br>

그 뒤로 보이는 가구마다 흰색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차에 타자마자 할머니는 주소를 주면서 다른 방향으로 갈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할머니, 그러면 돌아가는 건데요?”<br><br>

“괜찮아요. 나는 아주 시간이 많아요. 나는 지금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는 중이거든요. 식구가 없고 의사 선생님 말씀이 이젠 갈 때가 얼마 안 남았다고 했다우.” <br><br>

어둠 속에서 할머니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습니다. 토니는 요금 미터기를 껐습니다. 그로부터 두 시간 동안 토니와 할머니는 조용한 크리스마스 새벽거리를 드라이브 했습니다. <br><br>

그녀가 젊은 시절 일하던 빌딩, 처음으로 댄스파티에 갔던 무도회장, 신혼 때 살던 동네 등을 천천히 지나갔습니다. 때로는 어떤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그냥 오랫동안 어둠 속을 쳐다보기도 했습니다. <br><br>

어슴 프레 날이 밝아오자 할머니는 “이제 피곤해, 그만 갑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토니는 몸을 굽혀 할머니를 안아 작별인사를 했습니다.<br><br>

“젊은이는 늙은이에게 마지막 행복을 줬어요, 아주 행복 했다우” 할머니는 택시 기사에게 마지막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요금도 받지 않은 토니는 그날 할머니를 생각하며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br><br>

만일 다른 택시기사가 할머니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더라면... 토니는 “내 일생에 그렇게 중요한 일은 해본 적이 없어...” 하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br><br>

과연 우리도 이 할머니처럼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무대를 조용히 되돌아보며 떠날 수 있을까요? 아마 그렇게 떠날 수 있는 분들이 흔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속담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모두가 억울해 하면서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br><br>

선조 들에게 바치는 기도야 항상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가톨릭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11월 한 달을 먼저 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 드리는 “위령성월”기간으로 특별히 정해 놓고 있습니다. <br><br>

우리의 인연이나 만남은 현재 살아있는 사람들만의 인연이나 만남만은 아닙니다. 먼저 가신 분들이 이 세상을 살다 떠나갔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떠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가신 그 분들과 얼마든지 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영혼의 만남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습니다. <br><br>

가장 값지고 보람 있는 삶은, 떠날 때 감사하며 떠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앙으로 몸 바쳐 일생을 살아온 성직자인 주교나 원로 목사마저도 자신의 죽음을 거부하려고 몸부림치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br><br>

삶에 대한 애착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또 그것이 본능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하느님이 내려주신 순리대로 따라야 합니다. 때가 되면 마음 편히 갈 줄 알아야 합니다. <br><br>

하느님은 우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지혜를 이용하여 우리는 의술을 발달시키고 평균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그리고 은총입니다. <br><br>

그런데 그것을 마다하고 별도의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치유의 기도를 하느님께 드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능력을 포기하고 또 다른 기적만을 바라면 안 됩니다.<br><br>

이 세상에는 종교를 빙자하여 맹신적으로 병을 고치려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비일 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오히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회마저도 놓치게 됩니다. <br><br>

모든 병은 우선 의술에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치유의 기도를 병행해야 합니다.기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기적이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 기적의 치유가 있었다고 해서 그 육체적 생명이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br><br>

우리의 태어남도 우리의 죽음도 오직 절대자이신 하느님한테 달려 있습니다. 황혼이 아름답듯이 우리 황혼도 주님께 감사하며 아름답게 떠나갈 줄 알아야 합니다. </font><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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