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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2-10-31 00:00
 조회 : 12,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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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align="center"><font size="5" face="궁서" color="blue">갈매못 성지를 다녀와서</font></p>
<p align="left"> <font color="blue"> </font><font color="#6600FF">천사들이 모후Pr. 단장<BR><BR>10월이 시작되는 첫날 충남 보령갈매못 성지로 우리 샛별 꾸리아는 성지순례를 떠났다. 성모님의 보살핌으로 무척이나 화창한날씨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코스모스 물결이 싱그러웠다. 성지에 도착하니 그저 깨끗하고 좋아 보니기만 했는데 . 이토록 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세 참으로 슬픈 순교의 역사가 있었다. 1855년 초에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고. 충청남도에 대한박해는 같은 해 3월 11일 충남 합덕신리 공소강당에서 은거 ..전교와 성서 출판을 하시던 안 다블뤼주교님이 손치호(니꼴라오) 회장 짐에 기거하다잡히게 되면서 시작되었다.포졸들은 주교님께 다른 프랑스 신부님들이 숨은 곳을 대라고하였다. 주교님은 세거리 공소에서 전교하던 민위앵신부님과 수원 새암골에서 전교하던 오 메트로 신부님께 자수라라는 서한을 보내셨다. 주교와신부들이 죽으면 신자들은 해치지 않을 것이고 협박과 고문에 못이겨 진자들이 배교하지 않도록 기꺼이 순교하자는 뜻에서였다. 주교님 복사였던 황석두 루가만은 주교님을 따르겠다고 나섰다. 네분은 서울로 압송되었고 배론 신학교 집 주인인 장주기요셉과 합류하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 가까이서 사람을 죽이면 혼사를 얼마 남기지 않고 병중에 있는고종에게 화가미친다 하여 200리밖에 떨어진 충청도수영에서 참수하고 효수하여 훈계가 되게하라는 왕령으로 그곳으로 보내지게 되었다. 1866년 3월 30일 흥선대군은서양 오랑캐들을,내친다는 의미에서 세실 함장이 침범했던 외연도에서 가까운 오천수영에서 외연도를 향하여 목을 쳐 처형하게 하였다 장주기 요셉(본명 :낙소)은 부농의 l아들로 태어나 25세 되던 1826년 중병을 앓다가 형수 김발라라의 인도로 중국인 유방제 신부님께 세례를 받으며 가족모두 영세입교시키고 후에 신앙심을 인정 받아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855년에는 자신의 집을 신학교로 사용하게 하고 그는 신부님들과 신학생들의 식량을 마련하기위해 농사를 지었다.1866년 3월 1일 피신중이던 장주기 는 다른 교우들이 피해를 입을 까바 자수. 서울로 압송된 후 끝까지 순교하기를 갈망하여 이곳 갈매못으로 끌려와주교임과 신부님들. 그리고 황석두와 함께 순교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황석두 루까성인은 어려서남달리 총명했으며 과거급제를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던 그가 천주교 책를 접하게 되면서 과거는 도중이 그만두고 복사를 거쳐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안주교님을 도와 교리서를 번역하고 순교사 자료등를 출판하다가 체포된 황석두역시 피신하라는 안주교님의 말씀에도 주교님과 함께 순교하기를 간청하였다. 이외에도 박베드로. 손 치양 요한..이영중 이바르톨로메오 임운필등이 함게 순교의 길을 걸었다 이러한 조선에서의 천주교 박해는 1886년 한불 조약을 맺고 나서야 끝나게 된다. 1925년 당시 공주 본당 최말구 신부와 괴산군 높은 다랑이 주임 윤바오로 신부와 답사에나선 절레오신부의 적극적 노력으로 갈매못 순교현장을 발견했다. 1926년 에 정네오 신부님이 그땅을 사들여 서울 천주교 제단법인에 기증했다. 죽음앞에서도 흔들림없는 순교자들의 신심.처형이 연기될 기미가 보이자 성금요일에 죽게 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던 주교님. 안주교님의 목을 반만 자르고 는 판관과 돈흥정을 했던 휘광이. 그때 격었을 주교님의 괴로움....
순교자들의 이 모든 성스러운 고통앞에 서 지금 나의 신앙은 아주 작은 한 개의 점 인 듯했다. <BR></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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